이방인 - 후기
이방인 - 후기
moseoh

이방인 - 후기

moseoh · 2026년 07월 19일

저는 소설을 거의 안 읽는 편입니다. 그래서 《이방인》을 다 읽고 나서도 처음에는 딱히 감상이 없다고 생각했어요. “그냥 그랬구나” 정도랄까요. 뫼르소는 인과관계가 좀 없지만 평범한 사람이었고, 사람들은 그의 태도를 심판했다 — 이 정도가 전부였거든요. 근데 이 한 줄을 곱씹다 보니, 어? 이게 감상이 없는 게 아니라 이미 감상이더라고요. 뫼르소가 생각보다 평범했다는 것.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부조리니 실존이니 하는 걸 읽어내던데, 저한테 남은 건 그거였습니다.

뫼르소는 흔히 감정 없는 괴짜처럼 소개되는데, 읽으면서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. 그도 감정이 있긴 있어요. 마리와 함께 있는 걸 좋아하고, 바다에서 수영하며 즐거워하고, 더위를 불쾌해하고, 사형을 앞두고는 두려워하거든요. 그러니까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, 그 감정을 남들이 기대하는 형태로 보여주는 걸 안 하는 사람에 가까웠습니다.

살인을 재판하는데 왜 계속 장례식 얘기를 하지

재판을 보면서 제일 이상했던 건, 살인을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계속 장례식 이야기가 나온다는 거였습니다. 왜 울지 않았는지, 장례식 다음 날 왜 여자를 만났는지 같은 거요. 결국 살인보다 장례식에서 안 운 게 더 중요하게 취급되더라고요. 그걸 보면서 사람은 한 사건보다 “저 사람 원래 저런 사람이야”를 더 빨리 판단하는구나 싶었습니다. 그 시절 마녀사냥이 이런 식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.

왜 감정 대신 감각만 나오나

뫼르소가 사람을 쏘는 장면은 끝까지 납득이 안 되더라고요. 햇빛 때문이었다는 건 동기라고 하기엔 너무 흐릿하잖아요. 그런데 나중에 태양이 나오는 대목들을 다시 짚어보다가 좀 풀렸습니다. 뫼르소는 태양에 대해 감정을 말하는 데가 없어요. 짜증난다거나 싫다가 아니라 전부 이마가 뜨겁다, 빛이 눈을 찌른다 같은 감각으로만 나옵니다. 사람을 죽이게 만든 요소인데도 그렇게 처리하고 넘어가는 거죠. 여기서 감정을 안 준 게 실수일 리는 없으니, 작가가 일부러 비워둔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. 그래서 저는 뫼르소의 진짜 감정을 모르는 채로 끝까지 읽은 겁니다. 마지막에 신부한테 폭발하는 장면은 아직도 모르겠고요.

반대로 문체는 걱정과 달리 건조해서 오히려 좋았어요. 뫼르소를 어떻게 볼지가 온전히 제 몫으로 남으니까, 소설을 안 읽던 사람한테는 이 편이 더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.

뫼르소는 늘 1차에서 멈춘다

다 읽고 한참 지나 정리해보니, 뫼르소를 설명하는 규칙이 하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. 1차적인 것에서 멈추고 그걸 더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거요.

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낸 이유로 뫼르소가 말하는 건 현실적인 것들입니다. 봉급으로는 간병인을 둘 수 없었고, 둘은 서로 할 말이 없었다는 식이죠. 누구나 할 수 있는 타협입니다. 다만 보통은 그 과정에서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느끼고 그걸 키우잖아요. 뫼르소는 거기까지 안 갑니다.

마리도 같습니다. 욕정을 느끼고 그리워하고 함께 있으면 좋다는 것까지는 다 말해요. 그런데 사랑하냐고 물으면 그런 건 아무 의미 없다고 답하고, 결혼 얘기에도 네가 원하면 하자고 합니다. 감각은 말하고 이름은 안 붙이는 거죠. 앞서 말한 태양도 마찬가지고요. 그러니까 뫼르소는 상황의 인과관계를 엮지 않는 사람입니다.

그런데 이 규칙을 세우고 나서도 모르는 게 남습니다. 1차적인 건 책에 다 나오는데, 2차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. 죄책감을 안 느낀 건지, 느꼤는데 발전시키지 않은 건지, 아니면 발전이라는 걸 애초에 안 하는 사람인 건지. 그래서 저는 이 책으로 뫼르소가 솔직한 사람인지도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. 확실한 건 하나뿐이에요. 그는 사회가 원하는 걸 해주지 않았고, 그래서 사형을 받았습니다. 재판에서 심판된 건 살인이 아니라 사회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가였어요.

정작 나는 나를 심판하고 있었다

이상하게 다 읽고 나서는 뫼르소보다 제 생각을 더 하게 됐습니다. 최근에 면접에서 떨어지고 연애도 끝나면서 멘탈을 잘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. 면접에 떨어지면 “이번에 떨어졌다”에서 안 끝나고 “나는 왜 계속 이러지”까지 가고, 이별도 “관계가 끝났다”가 아니라 그때 했던 말들을 계속 되짚게 되더라고요. 사건 하나가 생기면 그걸 자꾸 저 자신 전체의 문제로 연결하는 거죠. 아무도 안 그러는데 혼자 계속 재판하고 있었달까요. 근데 뫼르소는 일어난 일을 그냥 일어난 일로 두는 사람이었습니다. 솔직히 그게 좀 부러웠어요.

사실 이 책을 읽을 때는 일어난 일과 저를 분리하는 연습을 한창 하던 중이었습니다. 요즘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고민이 그거였고, 마침 딱 그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거였어요. 예전에는 감정을 빨리 없애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. 감정은 느끼되 오래 붙잡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쪽에 더 가까웠어요. 실패 하나를 인생 전체의 판결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거요.

나는 뫼르소인가 사회적인 사람인가

근데 뫼르소가 부럽다고 해서 배워야 할 사람인가 하면,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. 사실 저는 뫼르소랑 닮은 구석이 있어요. 저도 제 사정이 안 되면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낼 것 같고, 여자친구가 결혼을 원하면 하고 아니면 말고, 그런 식으로 생각할 것 같거든요. 책에는 뫼르소의 속마음이 자세히 안 나오지만, 저라면 속으로는 충분히 고민했을 거고 안타까움도 있었을 겁니다. 다만 말로, 표현으로 안 하는 거죠.

여기서 느낀 건, 마음은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에게는 없는 것과 같다는 거였어요. 사랑하니까 만나는 거지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, 슬프니까 장례식에 있는 거지만 애도의 표현 한마디. 속에 있는 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그 한마디가 필요하더라고요. 그리고 그것도 저한테 부족한 거였어요.

근데 정리하다 보니, 제가 부러워한 게 뫼르소가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고요. 저는 뫼르소와 사회적인 사람 중 하나를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. 사회적인 사람은 상대가 원하는 걸 해줄 줄 아는 사람이에요. 그래서 원하는 관계를 얻습니다. 뫼르소는 안 해주고, 그래서 생기는 결과를 그냥 받아들입니다. 둘 다 자기가 한 것과 그 결과가 맞아떨어져요.

저는 그 중간에 끼어 있습니다. 뫼르소처럼 말하고 사회적인 사람을 부러워해요. 표현을 안 해서 상대에게 제 마음이 없는 것처럼 되는 대가는 치르면서, 정작 후회는 제가 합니다. 뫼르소처럼 말했으면 뫼르소처럼 후회도 안 해야 하는데요. 중간은 비용만 냅니다.

정리하면 뫼르소는 사회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았고, 자신도 그것을 알며 받아들였습니다. 저는 사회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서 사회에 섞이고 싶어합니다. 차이는 표현하느냐가 아니라 받아들이느냐였어요. 이 책에서 확실해진 건 뫼르소가 아니라 제 모순이었습니다.

다만 지금 제 상황 때문에 이런 면에만 집중해서 읽은 편파적인 감상일 수도 있겠습니다. 이 책은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도서인데요, 2주쯤 뒤면 다른 분들의 감상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. 다른 분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네요.